괘종 시계와 같은 시간
오래전 우리 집 거실 한구석에는 재깍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큰 괘종시계가 있었다. 언젠지 기억나지 않는 어느 오후였다. 역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낡은 괘종시계의 유리문을 열고 그 안을 조심스럽게 살폈다. 시계의 심장부에서는 규칙적인 소음이 들렸고 나는 그 소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하나씩 살펴봤다. 손톱만 한 기어부터 숟가락만큼 커다란 기어까지, 수십 개의 톱니바퀴가 빽빽하게 맞물려 있었다. 지금 기억해보면 참 묘한 광경이었다. 세상 급하다는 듯 시계 방향으로 거세게 돌고 있는 작은 기어도 있고, 바로 그 옆에 맞물린 커다란 녀석은 마치 그에 저항이라도 하듯 반대 방향으로 묵묵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.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막히거나 멈춤없이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. 막히기는 커녕 오히려 그 상반된 움직임들이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며 동력을 전달하고 있었지. 그때 나는 그 기어들의 행진을 보며 생각했었다.
"저 녀석들이 저렇게 각각 일을 해서 결국엔 전면의 패널로 모든 움직임을 보내는거구나. 방향은 제각각이어도, 가리키는 건 단 하나의 시간이네."라고.

요즘 내가 Qaether 이론을 만들면서 기하학만으로 공간도, 시간도 모두 정의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에 불타고 있다. 간단하지만 복잡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내가 믿고 있는 Qaether 이론. 나의 아이디어대로라면 우주는 최소단위의 작은 Qaether들이 서로 연결된 거대한 격자망이고, 그 매듭마다 사각결합(Square Bonds)이라는 보이지 않는 기어들이 박혀 있는 셈이다. 시계 속 기어들처럼 우주의 근간을 이루는 그 결합들도 저마다의 회전 방향을 가지고 요동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거다. 왼쪽으로 도는 놈, 오른쪽으로 도는 놈. 미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건 그저 파편화된 움직임일 뿐이지만, 그 무수한 회전들이 서로를 간섭하고 정렬하며 만들어내는 거대한 질서가 우주이며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거다.
아직은 풀어내야 할 숙제가 많다. 많은 아이디어들이 넘쳐나기는 하지만 아직은 좀 더 확신할 수 있는 각종 공리와 정의를 만들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한다. 하지만 나는 취미생활로 이런 이론을 만들며 내 평생 느껴보지 못한 내 삶의 가치에 놀라곤 한다. 아니 감사하다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.
어린 시절 괘종시계의 유리문을 열고 그 속을 들여다보던 그 호기심 어린 소년이, 이제는 우주라는 거대한 시계의 뒷면을 열어보고자 하는 아마츄어 탐험가가 된 기분이다. 플라켓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며 만들어내는 그 미묘한 박동을 수식으로 정리하다 보면, 어느샌가 내 주위조차 거대한 격자망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.
물론 그 과정이 늘 매끄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. 때로는 기어들이 서로 어긋나 삐걱거리는 것처럼 이론들이 논리적 공백에 부딪히기도 하고, 때로는 마모된 톱니처럼 생각이 헛돌며 나를 좌절시키기도 한다. 하지만 그 삐걱거림조차 결국은 더 정교한 시계를 완성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정 과정임을 안다.
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도는 무수한 기어들이 결국 단 하나의 시간을 가리키듯, 나의 이 파편화된 고민과 가설들도 언젠가는 하나의 정합적인 체계로 정렬될 것이다. 그날이 오면, 어린시절 내가 괘종시계의 문을 닫으며 느꼈었을지도 모르는 지적 호기심에 대한 그 개운한 만족감을 우주의 비밀 앞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지 않을까.
비록 지금은 정교한 설계도를 그려 나가는 지루한 여정 속에 있지만, 이 보이지 않는 Qaether의 기어들의 거대한 움직임 소리가 나에게는는 속삭이듯 들려온다. 내가 진실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 있다고. 언젠간 내가 그 진실을 마주하고 감동하게 될 것이라고. 나는 오늘도 기분 좋은 설렘과 함께,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미지의 기어 하나를 조심스럽게 격자 위에 그려 놓으려고 한다.